2008년 07월 18일
[오바니의 인도 여행] 4. 가이드북
당신은 어딘가 낯선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날 때 무엇을 준비하는가.
돈, 지도, 복대, 경험많은 이의 조언, 카메라, 맥가이버 칼, 후레쉬, 자물쇠와 체인, 그리고 가이드북.
인도 여행을 준비하기도 전에, 말하자면 내가 정말 인도를 가게 될까라는 의문을 스스로도 품고 있을 때 나는 가이드북을 샀다. 지난번 글에 썼듯이 한글판 론리 플래닛이었다.
론리 플래닛.
일단 이름부터가 가슴이 설레게 하는 포스가 있었고, 베게로 써도 무방할 듯한 두께, 읽는 이를 압도하는 깨알같은 글씨, 중간 중간 몰려서 등장하는 화려한 칼라 사진 등은 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를 읽다보니 단 몇장의 칼라 삽화를 넣고 칼라판 세계문학전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적어도 론리 플래닛은 특별히 칼라판이라고 써놓진 않는다. 어쨌든 본문은 흑백이라는 거다.
론리 플래닛의 모든 정보는 참 꼼꼼하고 세심하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에피소드도 중간중간 박스로 처리되어 있고, 일단 많은 지역의 정보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역시 론리 플래닛을 읽고서는 도저히 상상력이라는 걸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나만의 문제인가?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론리를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거나 하진 않더라는 거다. 결국 론리와의 설레이는 기억은 처음 그 책을 사고 표지를 막 열었을 때 뿐이었달까. 읽은 후보다는 읽기 전이 더 좋았던 유형이 책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런 점을 제외하고는 무척 좋은 가이드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어딘가를 가고자 했을 때 어떻게 가고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인도에서 만난 외국인들도 론리를 들고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하지만 한글판은 영어판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준 시점이 오래되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숙박비나 식비 등에 대한 정보를 볼 때면 30% 정도를 더 생각해야 현지 시세에 맞는 금액이 된다.
인도 백배 즐기기.
꼴까따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늘상 말했다. '백배 즐기기가 아니라 백배 속이기라니까~"
백배 즐기기의 출판사에서 보면 무척 서운할 말씀이겠지만 어디 세상에 호의적인 독자만 존재하겠는가. 그냥 마음을 비우시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백배가 그렇게 나쁜 책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내 돈 주고 산 일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과감히 론리를 찢어발겨 북부 지방만을 챙겨들고 인도행 비행기에 오른 관계로 남부 지방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참고로 가이드북을 찢어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한국인 밖에 없다고 한다. 마침 북쪽 일정이 취소되어 별 수 없이 남부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이드북이 없어 애를 태우던 차, 바라나시에서 한국인이 많이 찾는 비시누 레스트(게스트가 아니고 레스트다. 류시화 시인이 즐겨찾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종종 많은 한국인들이 릭샤왈라에게 속아 비시스 게스트 하우스에 간다.) 하우스에서 누군가가 버리고 간 백배를 주운 것이다. 아마도 그 가이드북을 버린 분은 북부로 여행을 떠난 듯 딱 내가 필요한 남부 지방 부분만이 남겨져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북부 여행이 잘 되었기를 빈다. 참, 네팔 부분도 뜯어간 걸로 보아 바로 네팔로 넘어가신 듯 하다. 바라나시에선 네팔로 바로 입국하는 혹은 네팔에서 넘어오는 여행자들이 많다.
손에 넣은 백배는 아쉽게도 구판이었지만 일행이 가지고 있던 신판과 정보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는 데다가. 그리고 구판의 디자인이 웬지 더 정감있고 보기에 편해서 숙소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뒤적이기에 무척 좋았다.
꼴까따의 어떤 식당에 대해 구판에서는 주인이 바뀐 뒤 음식맛이 나빠졌다고 돼 있다가, 신판에서는 한때 음식맛이 나빠졌다는 평가를 들었으나 최근들어 좋아졌다는 식이다. 또 없었던 숙소가 등장하고, 있던 식당이 빠져나간 자리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추측해보는 일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사실 백배에서 숙소, 식당, 관광지들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편파적인 정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먹을 음식이 안된다는 식의 평가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불만을 가지는 여행자도 보았지만, 가이드라면 만약 가이드를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백배같은 가이드도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으로 가득찬, 그러나 자기 생각은 뚜렷한 가이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내가 인도 남부의 대도시 첸나이를 지나 폰디체리까지 가서의 일이다. 꼴까따에서 첸나이까지 30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내려갔는데(그날 저녁 게스트 하우스 침대에 누워있는데도 몸에서 기차의 진동이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폰디체리에서부터는 백배의 정보가 거의 없거나 무의미하다시피 한 것이다.
식당이니 숙소니 하는 정보 자체도 엄청나게 부족했고, 제대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배낭 여행자들의 여행 정보를 모아 내용을 수정하는 백배의 제작 시스템 상 최근의 정보 변화를 반영하는 데 느릴 수밖에 없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남부지방에 잘 가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인 듯 싶다.
결국 몸으로 부딪히며 남부 지방 여행을 마쳐야 했는데, 잠시 동안 이 경험을 잘 정리하여 백배에다 팔아야 겠다는 앙큼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그러나 결국 보라. 여행을 마친지 7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여행담을 정리해 올리고 있는 내 꼬라지를. 가이드북 같은 건 쓸 수 없다. 나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인도 여행을 다녀온 한 친구가 나의 여행 결심을 듣고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라는 책을 준 적이 있다. 지금은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무진이라는 초창기 인도 배낭여행을 하셨던 분의 책이다. 그 책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 뒤적이다 보니 책 갈피 이곳 저곳에서 한때 길 위에서 그녀가 만났을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른 보리수 이파리. 아마도 보드가야의 그 보리수 이파리이리라.
그 이파리를 보며 내가 잠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제 여행은 끝났고, 가이드북은 내게 없다. 무거운 짐을 핑계로 한 도시를 지날 때마나 낱장으로 찢어서 버리고, 델리를 떠나던 마지막 날 델리편을 호텔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었다. 문득 친구의 가이드북이 생각난다. 나도 그 가이드북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왔다면 무수한 연락처와 보리수 이파리 따위를 나중에 뒤적여 볼 수 있었을까.
지금 내 방엔 여행에 미처 따라나서지 못한 론리 플래닛 반쪽이 남아있다. 남부 지방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론리 플래닛. 저 녀석이 내 배낭에 실려 인도행 비행기를 타게 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인도에 간다면 새롭게 가이드북을 사야 할 테니까. 친구와 포도주는 오랠수록 좋다고 했는데, 길동무가 되어줄 가이드북은 새로울수록 좋은 것이다.
내방 책꽃이 위에서 잃어버린 반쪽을 그리워하고 있는 론리 플래닛.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서 인생은 론리한 것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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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7/18 14:40 | on the road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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