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빠 이야기 1] 라모, 떠나다.

라모, 나는 아직 그 아이의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h와 r의 중간 정도가 될 첫 음은 어쩌면 내가 평생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그 아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그랬다. 무척 단순한 이야기다.

3년 전쯤, 함께 살던 친구가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건네준 한장의 팜플렛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록빠 탁아소'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북쪽 히마찰 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에는 '빼마'라는 티벳식 이름을 가진 한국 여인이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티벳 망명자 가정의 아이들을 낮 동안 무료로 돌보아 주는 탁아소. 록빠라는 이름은 '친구'나 '도움을 주는 이'를 뜻하는 티벳 말 Rogpa에서 딴 것이었다.

A4 용지를 삼단으로 접은 듯한 조잡한 인쇄물에는 록빠 탁아소에 대한 소개와 홈페이지 주소 정도의 간단한 정보가 있었다. 언제나 티벳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무심히 친구가 건넨 팜플렛.

그때부터 나는 록빠 탁아소의 후원자가 되었다. 한 아이의 한달 양육비에 해당하는 월 34,000원을 보내는 일대일 후원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나와 일대일 후원으로 연결된 아이기 라모라는 소식을 전하는 엽서를 받았다.

사진 속의 라모는 너무 천사같아보였고, 티벳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내 눈에는 너무나 한국 아이처럼 보였다. 중이염에 걸려 귀에서 고름이 흐른다는 라모는 탁아소에서 내내 울기만 하는 그야말로 탁아소 신참에 돐도 되지 않는 어린 아기였다.

그리고 얼마 후 라모가 돌을 맞았다. 돌 선물을 보내주고 싶었던 내게 빼마는 귀가 아픈 라모를 위한 약을 부탁했다. 그때는 처방전이 없이 약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 몰랐던 거다. 빼마도 나도. 우여곡절끝에 약을 구해 인도에 가는 인편으로 전달하고, 점차 귀가 나아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약을 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소아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라모의 귀가 이미 멀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눈물이 났던 생각까지 떠올랐었다.

라모네는 참 사연이 많았다.

티벳에서도 유목생활이 그대로 남아있는 오지에서 인도로 넘어온 라모네 아빠, 엄마는 같은 티벳 사람들과도 말이 잘 안 통할 정도로 사투리가 심했고, 차림이나 생활 습관까지도 유목민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래서 빼마는 그 가족에게 더 정이 간다는 얘기도 했다.

힘든 인도 생활 속에서 친정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라모 엄마는 위험을 무릅쓰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에 다녀왔다. 처음의 각오로는 티벳에 가서 감옥에 갇힐 각오를 하고 떠나는 것이어서 라모네 가족을 둘러싸고 탁아소 가족들이 모두 눈물바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다행히 라모 엄마는 친정 엄마도 무사히 만나고 심지어 떠나기 전에 미처 몰랐던 임식 소식과 잔뜩 부른 배를 동시에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라모는 동생이 생겼다. 그런데 이제 라모가 탁아소를 떠났다고 한다.

작년 가을 나는 인도 다람살라에 있었다. 언제나 가고 싶었던 인도 여행길이기도 했지만 라모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리고 록빠 탁아소에서의 40일 동안 마음껏 라모를 바라보고, 안아주고, 놀아줄 수 있었다. 어느새 울보에서 애교쟁이로 자라난 라모는 탁아소에 오는 세계 각국 자원봉사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독차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라모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다람살라를 떠나던 날 나는 눈물을 흘렸지만 언젠가는 예쁘게 자라난 라모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라모는 떠났고, 다시 돌아올 약속을 했지만 삶에서의 많은 약속이 그렇듯이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물론 라모가 그곳에 있다해도 내가 라모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던 일이다. 사실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라모와 탁아소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과 티벳 사람들 그리고...

오늘 빼마가 보내준 라모의 마지막 사진 엽서 속에서 그 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손에는 곰인형을 들고 목에는 목걸이를 걸고 있다. 이제 곧 만 세살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자기 이름도 또박또박 말할 줄 알겠지. 정작 나는 발음하지 못하는 그 이름. 라모.

라모의 떠남을 알리는 빼마의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따시델렉. 라모가 남인도로 떠났습니다.
다람살라에서는 도저히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물가가 비싸 살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여성 작업장이 조금만 더 안정적이면 라모 엄마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었을텐데......
다시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시작해야 하는 라모네를 생각하면 찡하네요...
네 식구가 떠나기 전에 그동안 고마웠다며 500루피와 선생님 수별로 카닥을 준비해 왔습니다.
남인도에서 어떻게 살거냐고 물으니 거기에 큰 티벳 절이 있다고, 그 앞에서 모모 장사를 할 꺼라고 합니다.
요새 록빠로 일자리를 찾으러 오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우리 탁아소 엄마들뿐만 아니라 유독 학교에 가본 적이 없는 티벳 여성들이 대다수입니다.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요새 제게 큰 숙제가 밀려오는 기분입니다.
어떻게 일대일 후원 아기를 새로 지정해 드려야 하는데 사실 저는 그보다 저희 여성 작업장에서 재봉 기술을 배울 엄마들이나, 재봉 기술을 가르쳐 줄 선생님 인건비를 후원받고 싶습니다. 마음을 정해서 메일 주세요.
항상 그렇듯 어느 쪽이나 감사할 뿐입니다.
남겔이 안부 전합니다. "How are you? Karate!"

2008. 6. 빼마 드림"

P.S. Karate는 록빠 탁아소에서의 내 별명이다. 탁아소 축제 때 공연할 티벳 전통춤을 연습하는 나를 보고 탁아소 매니저인 남겔이 카라데를 추는 것 같다고 붙여주었다. 마지막 떠나오던 날, 나를 위해 준비해준 에그 카레가 담긴 봉지에도 여지없이 Karate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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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바니 | 2008/07/09 22:15 | 티벳, 록빠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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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미지의 코드 at 2008/07/10 20:33

제목 : 티베트의 자유를 위하여 출간
티베트의 자유를 위하여가 출간되었습니다.티베트의 자유를 위하여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그동안 티베트 문제에 대해 밝혀온 입장, 성명, 연설문 등을 엮은 책입니다. 티베트 문제에 대한 티베트 망명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달라이라마의 육성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미국 상원, 유럽의회에서 티베트 문제에 대해 한 연설이 담겨 있고 불교와 민주주의 등 민주주의에 대한 달라이라마의 철학이 담긴 이야기들이 ......more

Commented by 오바니 at 2008/07/09 23:45
500루피는 우리돈으로 12,500원 정도다. 나름 경비를 아껴 생활하는 외국인 배낭 여행자는 대부분 하루에 2-300루피짜리 방에서 자고, 한끼에 50-100루피짜리 식사를 한다. 티벳 망명지의 사람들은 보통 한달 수입이 1500루피를 넘기기 힘들다.
Commented by 홍지헌 at 2008/07/10 16:50
의미있는 일을 했군요. 마음이 넉넉한 오바니에게 박수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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