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보내는 편지 6 - in India

vol 6. 20110504


이곳 다람살라에 사는 티벳 사람들에게 꿈은 뭘까요. 한국에 있을 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가끔 남들에게 꿈을 묻곤 했습니다. 생뚱맞다는 반응도 많았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대답해 주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물론 그들의 꿈이 다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제 꿈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분좋은 일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한 티벳 친구가 제게 인생의 목적 purpose of life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티벳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지만, 어쨌든 최근 들어서 이런 종류의 질문 자체를 받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말입니다.

이런 저런 대화 끝에 반대로 그 친구의 인생의 목적을 물었습니다. ‘simple and small life’라고 하더군요. 작은 집, 작은 가족과 단순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이죠. 참으로 소박한 답변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목적이라는 말조차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소박한 꿈은 멀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가족과 작은 집에서 단순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우리에게는 어쩌면 조금 욕심을 버리고 조금 불편을 감수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삶이 인생의 목적일 정도로 멀리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가 티벳에서 5년 전에 인도로 넘어온 것은 순전히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싸움하던 생활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과, 다람살라에 가면 달라이 라마도 마음껏 볼 수 있고, 티벳 말도 쓸 수 있고, 무엇보다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결심을 한 것입니다. 와 보니 어떠냐는 제 질문에 그는 “totally different"라고 웃으며 답했습니다. 어디에나 그렇듯이 이곳에서의 생활도 부풀려진 부분이 있는 것이죠.

사실 부모님이 중국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에게는 다람살라에서의 난민생활이 이렇게 고달플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으로 돌아간다면 달라이 라마가 다람살라에서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냐는 중국 경찰의 추궁에 시달려야 하고 최소한 2년이 넘는 감옥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난민의 숙명을 벗어나기 어렵게 된 그에게는 작은 가족, 작은 집, 작은 행복이 참으로 이루고 싶은 꿈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며칠 후 그 친구가 제게 사진 잡지를 빌려 주었습니다. 왠 사진 잡지인지 의아스러웠지만 빌려준 성의를 생각해서 뒤적이다가 이 잡지를 그 친구가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마 150루피나 하는 잡지를 샀을 리가요. 아마 우연히 어디선가 얻었겠지요. 그러다 문득 그렇게 단정하고 있는 저 자신에 대해서 놀랐습니다. 사실 가능성은 두 가지겠지요.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그 친구가 직접 산 잡지를 빌려준 것, 아니면 어쩌다 손에 들어온 잡지인데 여행자인 제게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그러나 한 번도, 단 한 번도 저는 티벳 사람이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잡지를 사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식사 한 끼에 4-50루피면 충분한 이곳에서 세배가 넘는 돈을 잡지 따위(잡지 발행인 여러분, 비하할 의도가 아닌 건 아시겠죠?)에 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더구나 사진이라니요. 디지털 카메라 하나도 갖기 힘든 이들에게 사진 전문 잡지라니 상상도 하기 어렵지요.

 

하지만 왜 그 친구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티벳 사람이 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 작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걸까요. 왜 작은 집과 가족과 평온만이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고 그조차도 멀리 있다고 말하는 걸까요. 왜 가족과 친구들은 이제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낯선 땅에서 가족도, 친구도 새롭게 만들어 가야만 하는 걸까요. 누구인가요.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던 것은. 단지 중국인가요. 아니면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우리들인가요.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꿈도 행복도 내 것을 그들과 나누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 자신인가요.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나라를 버리고, 혹은 잃고 떠도는 이들을 난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새 저는 그들이 꿈을 잃은 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록빠에서 보내는 편지 1

여행 다니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여성신문에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글을 청탁해 주신 전 직장 상사께서는 반응이 좋다고 하셨지만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좋아요. ^^http://www.womennews.co.kr/news/48065록파에서 보내는 편지록파(Rogpa)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활동 중인 티베트 난민 단체입니다.... » 내용보기

여성신문에 글 실리다

음 좀 쑥스럽지만 길 위에서 보내는 편지 중 한편이 여성신문에 실렸다. 적지만 원고료도 받는다는 거~ http://m.womennews.co.kr/news_view.asp?num=47947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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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5. 20101224여행을 떠나오는 많은 여성들에게, 어쩌면 남성들에게도 한비야 씨는 동경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일찍이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용기와 개척정신도 대단하고, 또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를 찾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나갔다는 사실도 대단하지요. 그 가운데서도 안정된 직장과 약속된 성공을 떨쳐버리고 아무것도...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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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4. 20101207어느새 12월 초가 되었습니다. 한국도 겨울에 들어서서 추위가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이곳 맥그로드 간지의 날씨도 하루하루 추워지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과 달리 특별한 난방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려면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다행히 한국에서 공수된 전기장판을 가지고 있지만요. 그러나 바닥에... »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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